살다 보면 가끔 흔히 보는 사물과 공간이 낯설 때가 있다. 그리고 우연한 일련의 작용으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때, 그것을 필연으로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무시하고 넘기기도 한다. 일본 작가 우메다 테츠야는 연극을 통해 이런 경험을 제공하고 관객에게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공연이 열린 지난 21일, 22일 영등포 문래예술공장은 무대가 아닌 하나의 낯선 공간으로 변했다. 한쪽엔 ‘안전제일’이라고 쓰인 호이스트가 있다. 콘크리트 바닥엔 관람객이 둘러앉아 있고, 가운데에는 페트병, 알루미늄 파이프, 캔, 의자, 필름 통이 무심한 듯 놓여 있다. 한 남자가 일어나 알루미늄 파이프를 들고 돌리다가 손으로 쓸어내리며 이상한 금속음을 낸다. 그는 한편에 놓인 버너에 파이프를 뜨겁게 달궜다 옆에 놓인 드라이아이스에 꽂아 놓는다. 그리고 드라이아이스를 못으로 부숴 그 조각을 필름 통에 담는다. 드라이아이스가 녹자 파이프가 달카당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드라이아이스를 담았던 필름 통은 갑자기 펑 소리를 내며 뚜껑이 날아간다.
우연히 있던 사물에 어떤 작용을 하면, 그다음엔 필연적으로 다른 사건이 일어날 것임을 안다. 반면 알루미늄 파이프를 드라이아이스에 꽂았을 때 직후에 일어날 일은 예상할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 드라이아이스가 녹고 파이프가 쓰러진 것은 필연이다. 이 공연은 우연과 필연 그리고 둘의 관계에 대한 공연이다.
일반적인 공연이 배우들의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과 대사를 따른다면 이 작품은 그 상식을 보기 좋게 허문다. 공연 중에 돌발 상황도 일어난다. 갑자기 관람객 사이에 있던 아이 한 명이 일어나 남자의 행동을 따라 한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또다시 다른 아이가 일어나 같은 행동을 따라 한다. 아이들이 등장하자, 이제 공연은 더욱 우연하게 흐른다. 아이들은 앞서 남자의 행동들 따라 하지만, 어딘가 서투르다. 당연히 행동의 결과는 달라진다. 그리고 한 명이 공연을 할 때와 달리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행동이 이뤄지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예측하기 더욱 어렵게 된다. 작가는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주변 환경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는 사소한 벽이나 전등 등 그리고 그 공간이 가지는 특징을 발견한다. 또한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적인 도구를 소품으로 활용하는데, 이를 통해서 정교한 인과 관계를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대부분 중력이나 물질의 변화 혹은 바람과 같은 요소를 활용하기 때문에 정확히 예측할 수 없고 우연적이다.
현대의 예술은 단순한 미감이나 숭고를 넘어서 어떤 정신적 깨달음을 추구한다. 그 깨달음은 작가의 것으로 관람객도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고, 아니면 관람객 개개인이 서로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전자는 작품 속에서 작가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지만, 후자는 대부분 작가의 의도를 발견할 수 없다. 작가는 그저 관람객이 무언가 느끼도록 유도할 뿐이다. 물론 이 경우 관람객이 무언가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공연에선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저 인과적인 결과가 우연하게 나타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이 작품은 일종의 어린아이의 장난이다. 아무런 의도가 없다. 아이들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뿐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그 원인만 제공할 뿐이다. 매번 공연할 때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한쪽 구석에서 아이들의 행동을 재미있게 바라보는 작가를 보는 순간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어른이 될수록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어떤 일은 정말로 우연하게 일어나거나 어떤 의도 없이 일어나기도 한다. 모든 일에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쓸수록 간단한 것도 어렵게 된다. 일을 어렵게 받아들이면서 즐길 수 없게 된다. 모든 일에는 항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난해한 공연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보다 때론 그냥 즐길 필요도 있다. <0회 초>라고 이름 붙여진 공연은 21일 금요일 3시에, <0회 말>이라 이름 붙여진 공연은 22일 토요일 2시에 공연되었다.
<김용순 SPACE 11기 학생기자>
201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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